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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와 삶의 목적 - 한국일보

Author
somangsociety
Date
2016-03-15 10:32
Views
1478

‘박용하’와 삶의 목적
(한국일보 발언대)

입력일자: 2010-08-13 (금)

‘박용하’란 배우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지난해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는 차드에서 그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우물 파는 모습을 TV 뉴스에서 접하고서다.

그리고는 지난 2월 차드의 운드 마을에 우물을 파러 갔을 때 겪은 경험은 지금도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한 주민이 한국 배우 박용하가 아이들에게 집을 지어주어 고맙다고 귀띔해 주기에 그 곳을 찾아갔다. 대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서 쳐다보니 큰 소리로 대뜸 “박용하!”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현지 어린이들은 우리 일행을 보자 ‘박용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마 ‘최고’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동양인은 모두 ‘박용하’로 통했다.

박용하가 아프리카 땅을 찾은 것은 지난해 9월이었지만 곳곳에 그의 체취와 흔적이 배어 있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목발이었다.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한 10대 소녀가 목발에 의지한 채 ‘박용하’라며 나에게 싱긋 웃음을 날렸다. 박용하가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박용하가 한국에서 구입해 갖고 온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까만 테입으로 감고 못질을 해 만든 것이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제야 차드 현지에서 재목을 구하고 톱질을 해 목발을 만들어준 것임을 알았다.

차드의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다. 한낮 수은주가 화씨 120~140도를 오르내린다. 박용하는 폭염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목발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교통수단이 없는 오지마을에 ‘자전거 수레’를 보급한 것도 그였다. 자전거 핸들 부분에 수레를 연결시켜 그야말로 전천후 이동수단이었다. 그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황토 벽돌집에서도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진흙에 마른 풀을 섞어 만든 흙벽돌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친환경 황토 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혹독한 무더위 속에서도 직접 벽돌을 만들고 집짓기 공사에 참여했을 그의 봉사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박용하가 지난해 며칠 동안이나 차드에 머물렀는지는 모르겠다. 늘 일정에 쫓기는 유명 연예인이어서 그리 오래 체류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에도 차드를 찾았다고 한다. 1회성으로 끝나면 그곳 주민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다시 방문했다는 것이다.

내년 3월이면 소망 소사이어티도 창립 3주년이다. 그 때 박용하씨를 꼭 초청해 ‘봉사간증’을 들으려던 참에 비보를 접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는지 모른다.

한류의 중심에 서있던 박용하,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가 왜 이 땅을 서둘러 떠나야 했는지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남을 위한 봉사에는 투철한 그였지만 정작 자신은 살아야 할 목적과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스타’라는 인생의 가치와 목표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 같다.

박씨가 삶의 목적이 분명했다면 귀한 생명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박용하씨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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