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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금 관행 다시 생각해 보자

Author
somangsociety
Date
2016-03-15 10:02
Views
839

조의금 관행 다시 생각해 보자 지난 5월 큰 언니의 죽음은 우리의 장례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가족회의에서 조카들은 조화는 물론 조의금도 일절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혹 ‘봉투’로 인해 불편해 하는 조문객들이 있을까 걱정해서다. 단 한 분이라도 이런 조문객이 있다면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조카들은 ‘조의금 사양’에 합의했다. “늘 남에게 베푸셨던 어머님도 우리의 결정을 기뻐하실 줄로 믿는다”는 조카들이 새삼 대견스러웠다. 부조금이 많이 들어오면 남은 돈의 분배를 둘러싸고, 또 적게 들어오면 경비 분담금을 놓고 유족들 간에 간혹 다툼이 일어나는 걸 본 터였기 때문이었다. 큰 언니는 생전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둬 장례식을 치르는데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조문객들 저녁 한끼 대접이 자녀들의 몫으로 남았으나 같이 분담을 해 부담이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조의금 봉투를 꺼내 들곤 누구에게 줄지 몰라 당황해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접수대’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의금 사절은 고인의 뜻이라고 설명해도 개중엔 ‘이건 애도의 뜻이 담긴 우리의 정성인데…’ 하며 못내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의 장례문화에 대해 또한번 생각하게 만든 것은 가깝게 지냈던 미국인 친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나서다. 일찍 도착한 조문객들이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걸어오는 걸 보고 놀랐다. 식장에서 가까운 곳은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는 것이다. 작은 일이지만 이것도 남을 위한 배려다 싶어 좋은 인상을 받았다. 정작 놀란 것은 장례식장에 조화가 달랑 몇 개뿐이었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에서 꽤 명망이 있던 분인데 조화는 자녀들이 보낸 것과 교회에서 보낸 것뿐이었다. 유족 측이 조화를 사양한다는 사실을 지역신문을 통해 미리 알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고인이 자원봉사했던 교회나 단체에 기부해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장례식장은 꽃이 없어 다소 썰렁하게 보였으나 추모 열기만큼은 뜨거웠다. 고인과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들려준 추모사도 있었고,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의 조크를 곁들여 좌중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게 한 조사도 있었다. 미국인 친지의 장례식을 보며 문득 큰 언니 장례 때도 조의금을 받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돈을 언니가 평소 하고 싶었던 좋은 일에 사용했으면 하늘나라에서도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LA 타임스 일요일자 신문을 보면 부고기사가 빽빽하게 실려 있다. 맨 끝줄엔 거의 예외 없이 기부금을 보낼 곳이 적혀 있다. 고인의 이름으로 기부해달라는 것이다. 대상도 고인이 다녔던 학교에서부터 생전에 관여했던 사회봉사 단체, 암협회를 비롯한 의료기관 등 광범위하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비영리 단체여서 기부한 금액은 세금공제혜택을 받는다. 한인 언론에도 부고가 매일 실리지만 조의금 대신 특정 봉사단체를 지정해 기부해달라는 광고는 아직 본적이 없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유가족이 아니라 고인이다. 고인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인을 기리며 어려운 이웃과 커뮤니티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의 장례문화는 한층 성숙할 것이다. 이런 전통을 1.5세와 2세들이 본받게 되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격상할 것이다. 우리의 부조금 관행도 바뀌어야 할 때다. 유분자 /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boonjayoo@hotmail.com 한국일보 10월 28일자 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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