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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이 된 사연 - 한국일보

Author
somangsociety
Date
2016-03-15 13:30
Views
1011

'친북'이 된 사연

 

유분자 

소망 소사이어티 이사장

 

 

 

“나는 뼛속까지 ‘친북’입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스개로 이 같은 말을 하자 참석자들은 진담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수군거림이 들려오더니 심지어 “벌써 노망이 드셨습니까?”하는 분도 있었다.

내가 ‘친북’이 된 사연은 이렇다. 몇해 전 글로벌어린이재단 임원들과 함께 북한 땅을 밟았다. 의료시설과 탁아소 등을 둘러봤는데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소한 체구에 꽝 마른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강성대국을 이룩한다며 핵무기 개발에 돈을 쏟아 붓는 북한 정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븐 린튼(한국명 인세반) 회장을 서울에서 만났다. 유진 벨은 평안남북도와 평양 등지에 ‘다제내성 결핵센터’를 세워 북한 주민들의 결핵치료에 힘쓰고 있는 의료구호기관이다. 북한의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 그 분의 말씀에 공감은 물론 가슴 한 켠이 짠해졌다.

‘다제내성 결핵’은 환자들이 일반 결핵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비용과 기간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수퍼 결핵’이라 불리기도 하며 북한에선 거의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수퍼 결핵’ 감염자는 일반 결핵 약값 보다 150배나 비싼 약을 최소 3년은 복용해야 완치된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결핵, 그것도 ‘수퍼 결핵’에 걸렸을까.

그날 만남에서 나는 ‘친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정치적 친북이 아니라 결핵 퇴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런 ‘친북’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제야 내 ‘친북’의 진의를 알아챈 때문이다.

북한을 도와주는 방법 중 가장 불확실한 지원은 현금이다. 어디에 쓰이는지, 그 흐름을 추적하기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의료지원 만큼은 다른 목적으로 전용될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이 일부러 결핵약을 먹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소망소사이어티는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유진 벨 재단에 1만 달러씩 모두 2만 달러를 쾌척했다. 재단 측은 이 돈으로 결핵약을 구입해 북한으로 보낸다. 우리가 재정이 넉넉해 후원금을 낸 것이 아니다. 지난 2012년 LA 한국문화원과 UCI 대학에서 열린 ‘생명 살리기 소망 갤러리’의 수익금으로 마련한 돈이다.

한인들로부터 그림이나 글씨, 도자기, 골동품 등을 기증받아 판매해서 얻은 수익금 중 일부, 그리고 남가주한인간호협회가 내놓은 후원금을 합쳐서 북한주민들의 결핵퇴치 기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5월에 두 번째 ‘소망 갤러리’를 열 예정이다. 전시회 수익금 중 상당 부분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결핵퇴치 기금으로 보내진다. 나머지는 아프리카의 최빈국 차드에 유치원을 건립하는 데 보태고, 독거 한인노인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북한에선 ‘수퍼 결핵’ 환자가 매년 5,000명 가량이 추가로 발생하고 있어 미주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녘 동포들을 위해 이번에도 소장품 기증자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망 갤러리’는 사랑 나눔 이벤트다.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을 기증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숭고한 인류애는 없을 성 싶다.

린튼 회장이 며칠 전 약상자를 들고 환하게 웃는 결핵환자들의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환자들이 받아든 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생명이고 사랑입니다.” 그의 짧은 편지를 읽고 나니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일보 A19면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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