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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은 곧 ‘웰다잉’

Author
somangsociety
Date
2016-03-15 10:24
Views
1644

‘웰빙’ 은 곧 ‘웰다잉’

입력일자: 2009-09-04 (금) 한국일보

내 어머님은 늘 미국에 감사하며 사셨던 분이다. 몸이 아프면 메디칼 보험으로 거저 고쳐주고 넉넉지는 않지만 생활에 궁핍함이 없도록 매달 웰페어로 돈도 보내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 아무리 둘러봐도 미국정부만한 효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씀을 우스개처럼 종종 하셨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해 산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한줌 가벼운 재로 남아 미국의 자연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어머님 나름대로의 미국이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던 셈이다.

어머님은 그때 벌써 수목장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죽음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검을 화장한 뒤 유골을 산이나 숲 속에 뿌리는, 이른바 ‘이코 다잉(eco-dying)’이다. 그때는 이런 말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머님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머님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로즈힐 공원묘지에 누워계신다. 우리 7남매는 뵙고 싶을 때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며 어머님을 묘지에 모셨다.
처음엔 1주일이 멀다하고 꽃을 사들고 어머님을 찾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며 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34년이 지난 요즘은 1년에 서너 차례나 갈까 모르겠다. 자식인 나도 그런데 손자와 증손자들이 할머니 묘소를 찾아갈 생각이나 할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진작 어머님 말씀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우리마저 이승을 떠나면 혼자 쓸쓸히 누워계실 어머님. 그래서 나는 어머님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

며칠 전 80대 노인에게서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장례를 놓고 집안에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본인은 화장을 원하는데 아들은 묏자리를 구입해 놓겠다며 맞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하소연이었다.

노인이 화장을 원하는 이유는 이랬다. 아들의 바람대로 묘지에 묻힌다한들 먼 훗날엔 파헤쳐져 결국 화장될 텐데 뭣 때문에 두번 죽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기도 싫다는 것이다. 죽음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맞지 못하는 그 노인.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를 했을까.

아드님과 함께 사무실을 한번 방문해 주십사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문득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삶은 (신의) 선물이지만 죽음은 (자신의) 선택이다”

요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삶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잘 살아야 할 것(웰빙)이고 죽음이 자신의 선택이라면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웰다잉)는 뜻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웰빙이란 것도 웰다잉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행복한 삶은 행복한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까. 인간은 죽
음의 존재인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행일 뿐이다.

한인사회도 이민 연륜이 높아감에 따라 점차 고령화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 이민 초창기 세대는 이제 죽음이란 새로운 여행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는 점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 그것이 바로 ‘웰다잉’이 아니겠는가.

유분자 /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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