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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우물은 희망 오아시스 / 1000번 고맙습니다.” 2013년 11월 27일 중앙일보

 

작은 우물 하나로 다시 살아난 마을
2년만에 인구 300명서 2000명으로
술탄도 감복 사비 털어 우물 2개 더 파

사하라 사막에는 ‘부활초(resurrection plant)’라는 식물이 있다. 바싹 마른 덤불처럼 굴러다니다가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닿으면 죽은 가지에서 몇 시간 만에 싹을 틔운다. 사하라로 가는 길목인 사헬(Sahel) 벨트지역의 리와(Lioua) 마을은 부활초처럼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2년 전 소망소사이어티, 굿네이버스와 중앙일보가 한인들의 온정을 모아 선물한 ‘소망 우물’ 덕분이다. 이 지역의 왕인 술탄은 깨끗한 우물을 “새로운 오아시스”라고 불렀다.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에서 북서쪽으로 430km,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리와.

모래 언덕에 잡목만 보이던 길 끝에 거짓말처럼 마을이 불쑥 솟았다. 북쪽 사막으로 더 이동해야 하는데, 가이드로 동행한 굿네이버스 차드지부 직원인 세레스틴(27)이 갈 데가 있다며 바쁜 걸음을 잡았다.

마을 한가운데 넓은 모래밭에 자리 잡은 단층 건물로 안내했다. 사막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집이었다. ‘술탄의 궁전’이라고 했다.

술탄은 이슬람사회의 통치자를 뜻한다. 과거엔 ‘왕’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지방의 맹주로 통한다.

세레스틴은 “마을 술탄의 허락과 보호를 얻어야 사막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술탄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니제르 국경에서 불과 20km 떨어진 사막 루트는 불안했다.

리와의 술탄 아둠 마흐마드(75)는 가신 5~6명을 거느리고 우리를 맞았다. 그는 “우물은 신의 축복”이라고 감사부터 했다.

그의 고맙다는 말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마을 우물을 설치한 세레스틴은 “소망 우물은 반경 80km내 유일한 맑은 물”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남쪽 차드 호수와 비교적 가까워 지하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 10여 개 마을 사람들이 술탄의 마을로 속속 모여들었다. 술탄은 “300여명이던 마을 인구가 2년 만에 2000명으로 늘었다”고 흐뭇해 했다. 몰락하던 술탄의 마을에 작은 우물 하나가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아준 셈이다. 사막에서 우물은 권력이었다.

소망 우물 때문에 술탄의 ‘닫혔던 곳간’도 열렸다. 술탄은 중앙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지방의 부호다. 아내가 셋이고 자식이 22명이다. 대부분의 차드 부자들이 그렇듯, 그도 식솔 챙기기에만 바빴다. 궁전 밖에선 사람들이 굶는데, 그의 집에는 등유로 돌아가는 마을 유일의 자가발전기가 있어 밤에도 전기가 들어온다.

주변의 헐벗음에 무관심하던 술탄은 마을 사람들이 많아지자, 우물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기꺼이 사비를 털어 우물 2개를 더 팠다.

20여 분간의 대화 끝에 술탄의 큰 아들인 차기 술탄 아바유노스(30)가 소망 우물로 안내했다. 해가 졌는데도 우물가 모래 위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았다. 깡통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동물 내장으로 만든 공을 찼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우물 펌프를 눌러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젖은 얼굴에 먼지가 달라붙어 분칠한 모습으로 뛰놀던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 이내 달려왔다.

아바유노스는 “당신이 마을에 찾아온 첫 번째 동양인이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이 반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바유노스에게 코리안을 아느냐 물었더니 우물 표지판에 박힌 중앙일보 로고와 영문표기(Korea Daily)를 가리켰다. 그는 “우리에게 한국을 가르쳐준 표식”이라고 했다.

우물이 있지만, 이 마을의 고민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주민 대부분이 끼니를 걱정하고, 한 집 건너 사람이 죽는다.

마을 동쪽 끝 움막에 사는 팔마타(20)씨는 3년 전 남편을 잃었다. 말라리아였다. 큰 아들도 생후 10개월 만에 남편 뒤를 따라갔다. 하나 남은 아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녀는 매주 한 두 차례씩 나귀를 타고 땡볕 사막 길을 하루 종일 간다. 리와에서 150km 떨어진 대도시 볼(Bol)에 나가 이 지역 특산물인 나트론을 팔아 음식을 사오기 위해서다. 그녀가 한 달에 버는 돈은 고작 3000세파프랑(6달러) 정도다.

대부분의 사막 마을이 그렇듯 리와에도 의료시설이 없다. 가장 가까운 병원도 볼까지 가야 한다. 길이 나빠서 차로 가도 3시간이다. 아바유노스는 “아픈 사람들은 병원 가는 길 위에서 다 죽는다”고 했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나니 해가 졌다. 사막에선 해가 지면 이동할 수 없다. 술탄은 기꺼이 우리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저녁은 염소고기와 빵, 금 그릇에 담긴 마실 물이었다. 배불리 먹고 술탄의 응접실 한구석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누웠는데, 술탄의 15번째 아들 베시르(16)가 찾아왔다.

그는 수첩에 꾹꾹 눌러쓴 글을 건넸다. “소망소사이어티와 굿네이버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 우물을 줘서 감사하고 주민들을 더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문장에서 열여섯 소년의 진심이 읽혔다.

“1000번 고맙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황야’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 ‘사흐라(Sahra)’에서 유래했다. 동서로는 홍해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남북으로는 차드 호수에서 지중해 아틀라스 산맥까지 940만㎢에 달한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매년 2만여㎢씩 늘어나고 있다. 차드를 포함해 12개 국가가 인접해있다. 온통 모래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래 사막은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석과 자갈로 되어 있다. 낮에 섭씨 50도까지 치솟았다가 밤에는 20도까지 뚝 떨어져 기온차가 크다. 250만 명이 산다.

글·사진=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발행: 11/27/13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11/26/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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