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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역마살과 디아스포라 - 한국일보

Author
somangsociety
Date
2016-03-15 13:32
Views
1614

간호사의 역마살과 디아스포라 유분자 재외간호사회 회장   “어쩌면 나는 엄마를 닮아 역마살이 끼었는지도 모르겠네요.”언젠가 우연히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이 지금도 머릿속을 휘저으며 맴돈다. 블로그의 필자는 올리비아.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독일인이다. 간호학교를 막 졸업한 엄마는 1960년대 중반 삶의 새 둥지를 독일 땅에 틀었다. 그곳에서 일자리와 사랑을 동시에 얻었으니 엄마는 엄청 행운이었다고 썼다.

올리비아는 현재 스웨덴에서 살며 헬스케어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반쪽 한국인. 엄마 역시 간호사”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올리비아 또한 간호사 출신임이 분명한 터.

그 옛날, 엄마가 고국을 떠나 독일에 왔듯이 자신도 고향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북유럽에서 일하고 있으니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한 것이다. 올리비아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간호사의 DNA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민’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과거’를 들으며 자란 탓인지 매사를 늘 엄마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는 올리비아. “엄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어려움이 닥치면 이 말을 되뇌며 이겨냈다고 털어놨다. 이 대목에선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독일인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데도 블로그에 실린 사진을 보면 겉모습이 완전 한국여성이다. 엄마 쪽의 유전인자가 더 강했나 보다.

양로원을 세워 12명의 독일 노인들을 정성껏 돌봐 한국인의 이미지를 바꿔놨다는 그 엄마. 인종편견이 심한 그곳에서 ‘저먼 드림(German Dream)’을 일군 그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올리비아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에도 관심이 깊은 걸 보면 언젠가는 엄마의 고향으로 역이민을 갈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여서 어디서 살든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으나 1960~70년대만 해도 ‘디아스포라’는 웬만한 용기로 엄두도 못낼 ‘사건’이었다.

한국인 간호사들은 서독파견에 이어 미국에도 취업의 길이 열렸다. 의료 인력이 크게 부족한 때여서 병원 측의 요구가 있으면 정부는 비자를 거의 제한 없이 발급해줬다. 필자도 그 시절 미국행 ‘디아스포라’ 대열에 끼여 텍사스에 터를 잡았다.

‘아메리칸 드림’ 또한 돌이켜 보면 ‘저먼 드림’ 못지않게 어려웠다. 고통과 회한, 그리고 상심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뱅뱅 돌았다. 그나마 서독의 간호사들은 집단 기숙사 생활을 해 말동무라도 있었으나 미국에선 나 홀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오늘날 미주 한인사회 구성원 가운데 열 명 중 한 명은 간호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로 인해 이민온 친정 쪽과 시댁 쪽 식구들도 증손주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300명은 족히 된다.

다음 달 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재외한인간호사회 주관으로 대규모 학술대회 겸 총회가 열린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간호사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다. 미국 명문대학 교수들은 물론 1.5세와 2세 간호사들도 대거 참여해 대회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이번 대회엔 ‘한국의 나이팅게일’ 김수지 박사도 참가한다. 노후 안락한 삶이 보장돼 있는데도 아프리카 말라위에 가 봉사와 함께 후진양성을 하고 있는 ‘전설’이다.

간호 이민도 벌써 반세기가 가까워온다. 올리비아의 말처럼 간호사들의 ‘역마살’ 덕분에 한인 커뮤니티가 이만큼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진다. ‘디아스포라’의 원래 뜻은 ‘흩어져 씨앗을 뿌리다’는 뜻이라고 한다. 1세대가 뿌린 씨앗이 싹이 터 이젠 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잎이 울창한 나무로 성장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일보 A19면2014년 6월 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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