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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2010년 9, 10월호에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펼치시는 김경래 상임이사와 홍양희 회장의 대담

김경래 상임이사
경향신문 편집국장 역임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사실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소유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존재이며 무엇을 위한 소유인가를 알게 되면 우리의 여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게 된다.

– 그리하여 움켜쥐었던 것, 쌓아 올렸던 것들을 풀어놓고, 내려놓아 나눔의 희락에 참여한다. 우리는 이세대의 풍조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절망적인 소비, 향락, 사치를 거부하면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부름 받은 거룩한 존재들이다. 이 작은 빛과 소금의 상징적 표현으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전개한다. 이 운동은 개방할 문호도 가로막을 칸막이를 두지 않기에 누구나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전개하는 자율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는 84년부터 시작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의 설립취지이다. 발기인 대표로 26년째 이 운동을 조용히 이끌어오고 있는 김경래 한국100주년기념사업회 상임이사(83세)를 모셨다.

“평생 사회로부터 공급받은 은혜를 갚는 의미로 재산의 사회 환원을”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나요?

한국 개신교가 선교 100주년을 맞는 1984년 이른 봄에 싹트게 되었습니다. 기독실업인과 전문직업인들의 조찬모임에 강사로 나온 서울대 손봉호 박사가 ‘기독교인과 재물’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은 물질에 대한 태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평생 사회로부터 공급받은 은혜를 갚는 의미로 재산의 사회 환원을 호소한 것이지요.

모임 직후 최태섭 한국유리 회장, 최창근 (주)밀알 회장 등을 주축으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이 발기되었습니다. 운동이 조직화되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일들로 인해 정신이 변질되기 쉬우므로 무조직, 무회칙, 무회비, 무홍보, 무사업의 5무 원칙을 세웠습니다. 거창하게 홍보하기보다는 가까운 친구에게 가슴에서 가슴으로 확산시키자는 것입니다. 총회도, 회보도 없고, 가끔 사발통문 식으로 소식을 알립니다. 회원들이 어떻게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지요. 그러는 동안 회원들이 속한 공동체(속회, 구역 등)를 통해서 잔잔히 퍼져나갔고 26년간 850명의 회원이 생겼습니다. 엽서를 통하여 의사표시를 한 850명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결심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두려워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죽음’에 대해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요즘은 나이가 차지 않아도 갑작스런 사고,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처에 죽음의 요소가 깔려있지요. 죽음은 멀쩡한 사람에게도 예고 없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이 실체를 인정하고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입니다. 죽음을 너무 심각하거나 경직화해서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이 있으니 죽음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죽음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은 웰빙의 완성으로 웰다잉할 수 있기 위한 실천운동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사생관은 전통적으로 지극히 현세주의적입니다. 이 운동의 취지와 현실에 충돌이 있어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내와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먼저 내용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첫째,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통하여 나의 종말을 늘 생각하고 살며, 갑자기 죽더라도 후손들이 당황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처리하도록 유언장을 써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이 바뀌거나 재산에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정초에 씁니다. 나는 수첩에 적어서 늘 가지고 다니기에, 갑자기 죽음이 오더라도 공포와 불안이 없습니다.

둘째, 유언장에는 살면서 잘못한 것을 돌아보면서 후손들에게 삶의 교훈을 적시합니다.

셋째, 소유의 사회 환원은 전적으로 회원 각자의 자의에 의해 그 규모나 대상, 그리고 환원 또는 기증하는 시기가 결정되지만 대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3은 유족이 쓰도록 수요를 충족시켜줍니다. 1/3은 본인이 살아생전에 사회에 환원합니다. 1/3은 죽은 후에 어느 기관에 기부하도록 유서를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산이 많아도 자손이 유언장대로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1/3은 살아있을 때 하자는 것입니다.
부동산, 주식, 골동품, 명품 등 소중한 물건에 대해 쓰되, 본인이 작성하고 서명하며, 날짜, 주민등록번호, 주소, 도장날인을 하면 됩니다. 재산이 아무리 적어도 남길 것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은 집 한 채 빼고 나머지 모두를 육영사업에 기부하였습니다. 대전의 어떤 장로는 전재산인 빌딩을 처분하여 1/3은 교회에, 1/3은 신학교에, 1/3은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에 기부하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자손들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또 어떤 교수는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던 가족을 생각하여 유산으로 대학병원에 치매노인 정신질환 clinic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회원의 90%가 기독교인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의 취지에 찬성하여 자원 가입한 분들이며,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회원이 된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입하기 전에 아내와 자녀들과 의존한 경우도 있었고, 말없이 신청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의논한 경우 “오히려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는 반응이 있었는가 하면 다소 저기압 상태에서 묵시적인 찬성을 얻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될수록 순수하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 모르게”

미국에서는 최근 빌게이츠 등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의 절반인 수백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하는데요..

우리도 학교를 위한 기금마련과 향토발전을 위한 기부운동에 불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단, 조심할 것은 반대급부를 바라는 것 즉, 기부 후 이득을 취하려 하면 안 됩니다. 될수록 순수하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 모르게 해야 합니다. 성경에 있듯이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무명씨 운동으로 조용히, 이름을 내지 말고 합니다. 기부하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나 알아보다가 이 운동이 알려지도록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저절로 신문 등에 기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운동의 주체가 알리기보다는 회원들의 삶의 현장에서 각자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과 함께 앞으로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바꾸는 귀한 일이 확산되어야할 것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이냐, 어떻게 죽음에 대비하느냐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나의 아내는 평소에 인공연명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확고히 밝혀왔습니다. 그런 아내가 2008년에 폐암 말기로 소생의 가능성이 없자 가족들이 아내의 뜻을 따라 그대로 숨지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의사들은 윤리위원회를 소집하여 산소호흡기를 떼었습니다. 아내는 신앙심이 무척 깊은 사람이어서 본향인 천국으로 가는 것인데 어차피 갈 사람 며칠 더 연명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했습니다. 남은 사람에게도 덕이 되지 못하고 자손에게도 폐가된다고 하였고 인공연명도 새로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이다’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목표를 가지고 살도록 이끌기 위한 어른의 책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정교과서 속에 죽음 문제, 웰다잉 문제에 대한 것을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경제, 풍요, 출세, 성공, 지식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힘에 어떻게 대응했나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싣는 것입니다. 교과서에는 죽음을 노래한 시인의 시조차 없습니다. 학교교육에서부터 죽음을 예비할 수 있는 지식과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실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사하게도 2남6녀, 22명의 손주, 2명의 증손주까지 전가족이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갑니다. 이생에서의 가장 큰 행복은 예수 안에서, 복음 안에서 교회중심으로 성경, 찬송, 기도에 집중하여 사는 것이라고 믿기에 신앙의 유산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안에 살 때 요즘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이혼, 자살, 성문제가 예방되고 치유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삶과 사랑과 죽음> 2010년 9, 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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