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홍양희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
김일순 박사 (사진)
전 세브란스병원 원장(예방의학)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
20년 가까이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이끌며 음으로 양으로 국민건강 증진에 매진해오시다가, 지난해 10월 28일부터는 고령인들을 위한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시는 김일순 박사를 릴레이대담에 모셨다.
홍양희: 박사님께서는 작년부터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을 창립하여 이끌고 계십니다. 이 포럼의 취지와 활동에 대해서 말씀해주기시 바랍니다.
김일순: 현재 노인인구로 분류되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550만명에 이르고 2050년에는 38.2%인 1,90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고령인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결코 불행한 연령대가 아니고 오히려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연령대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고령자 스스로도 깨닫게 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의식수준부터 바뀌어야
제 나이가 74세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65세 이상부터 노인 취급을 합니다. ‘경로우대증’을 주어 지하철을 무료로 타게 하고, 얼마 전에는 65세 이상이 되면 무조건 월 15,000원씩의 노령교통수당을 지급한 적도 있습니다. 노인정책 보고서나, 신문에서는 몇 년 후면 노인인구가 너무 늘어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이 많아서 큰일이라고 연일 보도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활동에서 고령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령자 자신도 65세가 넘으면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무 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희망근로에 참여하는 어르신도 열심히 일할 생각을 않고 내가 늙었으니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에는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1.5%밖에 안 되었고, 40세부터 중 늙은이라고 했습니다. 15년 전만 해도 75세에 돌아가시면 호상(好喪)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90세는 돼야 호상입니다. 평균수명은 이미 80세가 넘었고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90세 이상일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이처럼 길어지고 건강해졌는데도 의식수준은 50년대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노인의 개념 의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건강한 65세면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데도 노인으로 취급당하며 스스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꿔야 합니다.
홍양희: 우리나라 노인정책이 노인을 시혜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할 대상에서 스스로 자기 삶을 영위하도록 사회적 여건을 갖추도록 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군요.
걷기운동만 해도 노년 건강 보장
김일순: 65세 이상에게 지하철이 무료인 것은 경로사상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하철도 적자운영이고, 의료보험도 고령자 때문에 재정이 파탄에 이른다고들 하면서 이대로 두어서는 국가적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고령자들의 건강증진과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해 골든에이지포럼에서는 고령자 걷기운동을 적극 장려하기로 하고 ‘고령자 걷기지침서’를 개발, 보급하고 있는데, 열심히 걷기만 해도 병원 의료비의 40%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자기결정권 실천운동
또한 죽기 직전에 중환자실에서 의료비의 30%를 쓴다고 하는데,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이 제일 불행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으로 연명은 하지만 각종 튜브로 둘러싸여있고 의식은 있으니 튜브를 뺄까봐 움직이지도 못하게 손까지 묶어놓기도 합니다. 고문이나 마찬가지이지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곡기를 끊고 수분만 섭취하는 분을 보았는데, 저와 아내 역시 연명치료는 물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홍양희: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무이고 윤리적 문제도 있으니까 기술이 있는 한 살리도록 노력하지요. 그러나 의료집착적인 태도는 존엄한 죽음을 방해하는 면도 있지 않습니까?
김일순: 본인이 자기 의사를 결정해야 합니다. 법적, 윤리적 문제가 따르는데 이와 관련하여 골든에이지포럼에서는 11월말, 12월 초에 우리 실정에 맞는 <존엄한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본인의 결정에 따르되 의사의 의견은 존중하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국가적 손실이고, 자녀에게 고통이며, 본인도 고문 받으며 죽지 말자는 것입니다. 본인이 썼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위해 골든에이지포럼이 한 부를 보관하든가 할 것입니다.
고령친화용품 개발과 보급에도 나서야 합니다. 노인은 발의 모양이 바뀌기 때문에 노인을 위한 신발을 만들어야 합니다. 옷도 노인을 위해 디자인된 것은 없습니다. 특히 남자노인들은 90%가 잠바를 입는데 품위있게 디자인한 고령자를 위한 옷이 필요합니다. 이가 시린 노인을 위한 치약이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는데 이런 실버산업이 더 발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홍양희: 대가족제도에서는 죽음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이제 죽음은 병원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만납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 조상들은 장수를 염원하며 죽음을 불길하고 금기시하는 어두운 죽음문화가 우리의 의식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변하지 않고 죽음은 감춰지고 불길한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죽음문화를 건강한 생명문화로 변화시켜야한다고 말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령자의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일
김일순: 옛날의 죽음은 슬픈 죽음이었습니다. 영양부족, 감염, 전염병에 의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90세의 죽음은 호상이지 그리 슬프거나 통곡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30대에 죽음에 대해 공부하면서 영적인 사람들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죽음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삶의 중심은 영계(靈界)이고 잠시 동안 지구(물질세계)로 왔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독교에서 영결식(영원히 결별), 영면(영원히 잔다)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입니다.
내가 무척 감명 깊게 읽었던 스콧 니어링의 책(아름다운 삶 사랑 마무리)에서 그는 죽음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하여 직업적 장의사, 전문적 종교인, 의사에게 장례식을 맡기지 말자고 했습니다. 장례식은 요즈음 처럼 자녀의 위상에 따라 거창하게 하기보다는 가족끼리 조용히 하고,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죽음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홍양희: 의학적으로 인간의 수명의 최고 한계는 120세라고 하는데 정말 가능한가요?
김일순: 성경에도 인간의 수명은 120세라고 했고 주역에도 두 회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세포 수가 점차 줄어 면역세포수가 어느 정도 이하가 되면 죽는데 그 나이가 120세입니다. 지금까지 최장수는 125세 정도이지요. 암은 75세가 넘으면 잘 걸리지 않고, 당뇨, 고혈압 등 특별한 질병이 없는 사람은 오래 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양희: 우리사회의 자살률은 심각합니다. 자살은 주관적 죽음일까요. 우리 사회 현상에 그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자살예방의 대책이 없을까요.
김일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죽음을 내 문제가 아니고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에 대해 말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안 되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콧 니어링은 자살을 난폭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옳다, 그르다고 가치부여를 못할 것입니다.
홍양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김일순: 우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서 책을 내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인 노경병 박사는 죽음이 다가오자 마음에 갈등이 있었던 사람, 감사 표현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모두 병실로 불러 마음의 부담을 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고는 돌아가셨습니다. 유언장에는 호상(護喪, 상가의 상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책임을 맡아 진행하는 사람)해줄 사람도 부탁해놓았고, 이에 필요한 돈은 은행구좌에 넣어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집사람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살면서 주중에는 서울에 올라와 일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집안에 어른이 병이 나시면 가정이 풍비박살이 날 정도의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그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노인이 되어도 자녀들과 따로 살면서 아프지 말아야겠지요.
홍양희: 죽음을 극복한 분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들이 보다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로 죽음을 극복하신 분들의 삶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마지막 성장>이라는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 러 로스의 가르침이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삶과 사랑과 죽음> 2010년 11, 1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