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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떠밀려온 순종의 길  2007년 7,8월호 대담 중에서

 

대담ㆍ 홍양희,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

정연희 선생님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당선(57년) 후
수십편 장. 단편 발표
한국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유주현 문학상,김동리 문학상 수상
주부편지 발행인,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홍양희: 선생님께서는 일상샐활에서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정연희: 제게는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주제입니다. 저는 출생 때부터 죽음이 있었어요. 지금도 죽음을 생각 안 하는 날이 거의 없지요.죽음은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처럼 세계라는 뱃속에서 살다가 차원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친정부모님 운명을 지켰고 시어머님 장례를 치른 일 등 죽음 체험을 많이 한 편인데, 지금은 삶이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죽음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64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곧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막막하고 단절감으로 힘들었어요. 그러나 1974년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앙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주님이 부활을 약속하셨으니 부활신앙을 믿습니다.

홍양희: 신앙을 갖기 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요

정연희: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8개월만에 어머니도 쓰러지셨어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고 허무감에 빠졌어요. 살아있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요. 신앙을 갖기 전의 나의 삶은 험난한 광야의 세상이었어요.

저의 출생부터가 죽음을 안고 태어났어요. 출생의 큰 아픔이 있었는데,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7개월쯤 됐을 때, 잘 생겼고 온 가족의 사랑 속에 있던 아들이 죽었어요. 전 오래비 잡아먹은 계집애로 미움과 분노의 대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이후에 남동생을 못 보는 것도 제 탓이 돼버렸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화해가 안 되었어요. 일찍 복음을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걸.

지금은 저희 집 정원이 아주 넓은데, 부모님을 납골을 하여 정원 한쪽에 모셨고, 꽃동산을 만들어 드렸어요. 그리고 화해를 했어요. 그 꽃동산에서 봄가을 두 차례 음악회를 열고 있어요.

홍양희: 선생님은 대학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소설 파류상(破流狀)으로 등단하셨어요. 하나님을 등지는 수녀의 이야기인데, 하나님의 섭리에는 타당성이 없다는 주제였지요. 초기에는 계속해서 신을 무시하고 살아낼 수 있는 인간의지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셨다고 하셨어요. 올해로 문단 등단 50주년을 맞으셨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순교자 주기철’, ‘여섯 째 날의 오후’ 등 기독 문학의 대가로 우뚝 서셨습니다.

정연희: 이화여대에 입학했는데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적 분위기, 채플 참석, 기독교 문학 강의, 성경 또 선교사 교수들 –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십자가, 예수, 예배, 믿음이 내게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는데 내재된 깊은 반감과 뒤섞여 내 속에는 단단한 척화비가 세워졌어요.

그러나 신앙을 갖게 된 후 84년인가 외국인 묘역 양화진을 방문했어요. 비바람에 깎여 글자도 희미한 비석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총탄 자국의 비석들, 한쪽에 조르라니 누워있는 애기무덤들을 보면서 이 땅의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칠 만 했으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궁극적인 목적으로 지향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양화진 묘지 위에 서서 아름다운 배역을 맡았던 분들의 삶을 보며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 사랑의 역사를 영혼의 떨림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듬해 1년 동안 초기 선교사들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려고 세계일주를 했어요. 1986년 장편소설 이야기 선교사 ‘양화진’을 출간했습니다.

홍양희: 선생님의 기독교 소설 속의 존귀하고 숭고한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정연희: 신앙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자기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자기 신념보다도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한 확신, 순종입니다. 그들도 죽음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고뇌, 갈등, 가족에 대한 사랑, 아픔이 왜 있지 않았겠어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중 순교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아드님의 증언을 들으면서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일까. 왜 그런 죽음을 겪어야 했을까.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가 겪는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정한 신앙이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 순종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순종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순종의 기회와 의지도 그 분이 주십니다. 이역만리에서 40일씩 걸려 낯설고 미개한 한국 땅에 내린 것은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일지라도 기쁘게 순종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등 떠밀려 오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끌리어 등 떠밀려 온 이곳이 그들에게는 영혼의 고향일 수밖에 없지요.

우리의 옛 어른들은 죽는 복을 달라고 기원했어요. 편안하게 죽기를 염원했지요. 그러나 삶의 모습이 그대로 죽음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저는 스코트니어링과 헬렌니어링의 공저인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스코트니어링이 100세에 죽으면서 당부한 글에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나는 할 수 있다면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지붕이 열려 하늘을 볼 수 있는 집에 있고 싶다.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산소호흡, 심폐소생, 진통제 등, 어떠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껏 열심히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 아니라 깨어남이다. 삶의 한 측면이다. 죽음의 자리에 함께 하는 이들도 조용히 위엄과 평화로움을 갖추고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자연에 순응하는 풀처럼 끝나는, 자연과 동화된 죽음을 죽고 싶다.

홍양희: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여기가 아름다워 떠나기 싫은 마음 갖지않게 해달라고 기도

정연희: 죽음을 생각지 않는 날이 없지만 죽는 것도 알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알고 있으나 실천은 쉽지 않아요. 저희 집은 안성 쪽에 넓은 정원을 가진 집인데 온갖 야생화가 봄 여름 가을 내내 아름답게 피고 집니다. 매실 자두 등 열매도 주렁주렁 탐스럽습니다. 정원을 손수 가꾸고 거닐다 보면 성령이 저와 함께 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여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떠나기 싫은 마음을 갖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내외는 유언장을 작성하여 교회에 맡겼습니다. 둘이 함께 여행을 가도 안심입니다.

언젠가 전주의 어느 수녀원을 방문했는데 수녀님이 해묵은 가구를 열심히 닦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느껴지는 공기가 다르더라구요. 살아있는 동안 생긴 물건을 열심히 닦는 일. 제가 정원을 열심히 감사하며 가꾸는 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들은 무소유의 삶이지만 전 아직도 허욕, 명예욕을 다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죽음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다고 하겠지요. 나를 돌이켜보면 심란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내 모습입니다.

홍양희: 1987년 한국기독여성모임회의 회장을 맡아 지난 20년동안 이끌어 온 주부편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날개 달린 편지가 되어 세계 각처에까지 독자층이 퍼져있고 위기가정을 회복시키는 기적의 편지로 주부들에게 새로운 삶과 소망과 가치를 심어 주었습니다. 주부편지는 2007년 7월에 지령 221호를 내셨더군요.

정연희: 이 일도 등 떠밀려 해온 일입니다. 전 신앙생활 전에도 이기적이었습니다. 시간을 빼앗기거나 남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게 싫었어요. 오죽하면 어머니가 산 속에 움막 짓고 혼자 살아라고 하셨지요.
85년 기독교 여성문인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87년에 느닷없이 회장직을 맡겼습니다. 수락하고 기도하는데 까닭 모를 눈물이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이 길이 험난한 길이기에 성령님이 아시고 나와 더불어 우셨던 것 같습니다.  30여명이 모여 간증한 글을 다른 두 작가가 대본을 집필하고 또 작가들이 직접 연기한 두 편의 연극공연으로 주부편지 -가정회복을 위한 문서 선교지- 발간기금을 모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 땅의 주부들이 변화되면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기 시작한 16쪽의 손바닥만한 주부편지는 날개를 단 듯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숱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연극공연으로 얻은 수익금은 20년 동안 거의 바닥이 나고 2.000원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지는 주부편지는 지금 3만부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짐을 내려놓고 후임자에게 발간 책임을 넘겼습니다.

홍양희: 앞으로 쓰시고자 하는 작품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정연희: 나는 험한 삶을 살았으며 오해의 바다를 헤엄쳐 온 듯도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거둬주신 은혜가 큽니다. 기적을 많이 체험했구요. 넓은 정원을 가꾸고 사회활동에 분주하고 그러다 보니 자투리시간에 글을 씁니다. 그러나 문학은 호흡하는 생명과 같아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양화진’을 쓴지 20년이 흘렸습니다. 앞으로 쓸 책은 한국의 근세사를 내 시각으로 소설을 써볼 생각입니다. 역사의 행간을 보면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내가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나 고백의 간증을 써보고 싶습니다.

홍양희: 괴테는 파우스트를 80세에 쓰기 시작하여 82세에 완성했습니다. 훌륭한 작가들이 불후의 명작을 말년에 집필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한국의 근세사를 통하여 우리 험난한 근세사를 바로 읽을 수 있으며 그 역사의 현장에서 숭고하고 고결한 죽음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중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 소설가 정연희의 묵상일기

서슬 푸르게, 서슬이 퍼래서..
인생 중에 누가, 그리도 서슬 푸르게 살고 있는가.
제 생각, 제 뜻만이 옳다고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저는 죽는 일도 망하는 일도 없을 것처럼,
서슬이 푸르게 큰 소리 치는 권력자,
하늘을 흔드는 인기
땅을 흔드는 돈부자들.
그러나,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오직 불멸의 영혼, 하늘문을 향하여 틀림없는 발걸음을 딛고 가는,
그 걸음에서만 새로움이 열리나니..
지금까지 내가 주께 대하여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백의 자리에만 새로운 문이 열리나니
누가 서슬 푸르게 살고 있는가,
서슬이 시퍼래서 살고 있는 그가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으리.

– 주부편지에서

<삶과 사랑과 죽음> 2007년 7,8월호 대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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