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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엄마의 성탄절 선물 2013년 12월 20일 중앙일보

 

[윌셔 플레이스] 엄마의 성탄절 선물  [중앙일보]
박용필 논설고문
 
 

“아프리카는 광야가 아니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오히려….”

 

‘검은 대륙의 심장’이라 불리는 차드. 그곳에 우물을 파주기 위해 다녀온 분이 소망소사이어티 송년 모임에서 털어놓은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동영상에 비친 마을 어린이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풍족한 미국이 반대로 광야처럼 보였다며 잠시 말을 끊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목이 메였던 것 같다.

여행에는 아들 제임스 이가 함께 했다. 주니어 골프계를 석권하다시피해 주류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등 한때 PGA 유망주로 꼽혔으나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교통사고로 손목 인대가 끊어져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골프를 포기해야 했다. 프로 진출을 앞두고서였다. ‘기러기 엄마’로 미국에 온 것도 아들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엄마는 그런 아들을 데리고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난에 찌든 곳, 툭하면 부족끼리 총질하는 나라. 그런 선입견이 들기도 했으나 차드는 결코 저주의 땅이 아니었다. 비록 먹고 입는 것은 보잘 것 없었으나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 되레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줬다고 했다. 며칠을 그들과 함께 살다 보니 힐링이 됐다는 것이다.

과소비에 집착해 살고 있는 이곳이 아프리카인들의 눈높이로 보면 광야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앞으로 소득의 3분의 1을 나눔을 위해 쓰겠다고 했고 아들은 PGA 대신 선교를 삶의 목표로 삼겠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어플루엔자(affluenza)’ 이른바 ‘부자병’에 걸린 사람들을 꾸짖는 듯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풍요를 뜻하는 ‘어플루언스(affluence)’와 유행성 독감인 ‘인플루엔자(influenza)’를 묶은 합성어다. 탐욕이 전염병처럼 번져 사회를 황폐화시킨다는 질환이다.

얼마전 텍사스의 10대 소년이 ‘어플루엔자’에 걸려 끔찍한 사고를 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용어다. 음주운전으로 4명이 그자리에서 숨지고 2명은 뇌손상 등 중상을 입어 지금도 입원 치료중이다. 법원은 살인혐의로 기소된 소년이 ‘부자병’에 걸린 상태에서 사고를 냈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호관찰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20년 징역형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감옥 대신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판 ‘유전무죄’의 사례라고 할까.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이 갖고, 더 흥청 쓰고 싶어 생긴다는 부자병. 삶에 대한 무력감, 스트레스, 쇼핑·약물 중독, 감정통제 불능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고 한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모가 아들이 원하는 걸 모두 들어줘 부자병을 앓게 된 탓에 사고를 냈다는 변론이 먹혀 소년은 면죄부를 받았다.

부자병이라고 해서 꼭 돈 많은 집안의 아이들만 걸리는 게 아니다. 물질만능의 세태가 판을 치다보니 요즘은 누구나 쉽게 이 병에 노출된다. 인플루엔자는 백신도 있고 치료제도 나와있으나 ‘어플루언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약이 없다. 대책은 예방뿐.

할러데이 시즌을 맞아 값비싼 선물을 사주는 대신 홈리스들과 반나절만 어울리도록 기회를 줘보자. 그들의 눈높이에서 지내다 보면 치유가 될지 싶다. 아들에게 ‘차드’라는 생애 가장 소중한 성탄절 선물을 한 그 엄마의 품이 넉넉하게만 느껴진다.

 
 
발행: 12/20/13 미주판 25면   기사입력: 12/19/1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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