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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난생 처음보았습니다. – 중앙일보

 

‘유언장’ 난생 처음 써보았습니다…본지 기자 체험기[LA중앙일보] 가족과죽음오버랩…순간 ‘눈물이 핑’
아름다운 고백 끝내자…미소가 지어졌다

취재 며칠 전 부터 마음을 다잡았지만 정작 유언서를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유언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고 없는 사고나 사망으로 당황할 내 가족을 위하여 나의 소망을 기록합니다’라는 유언서에 적힌 글귀를 눈으로는 읽어 내려갔지만 머리 속에는 온통 ‘난 아직 젊고 결혼도 안 했는데…’라는 생각뿐이다.

쉽게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숨을 크게 한번 가다듬고 일단 기본 정보부터 적기로 했다. 개인 신상을 정해진 양식에 따라 써내려가다가 ‘가족란’ 대목에서 필체가 약간 엉클어졌다. 만약 죽게 되면 가족관계 파악과 연락을 위해서 작성하는 것이지만 역시 ‘죽음’과 ‘가족’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살짝 눈물도 날 것 같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옆에서 함께 유언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진부 선배인 김상진 기자의 표정을 봤다.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진지하게 유언서를 써내려가는 선배를 보니 나도 덩달아 숙연해진다.

유언서 작성을 돕는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회장은 “대부분 ‘가족란’에서 깊이 생각을 한다”며 “가장 소중한 사람들인 가족에게 느끼는 애틋함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유언서에는 장기기증 여부에 대한 질문도 있다. 만약 이곳에 체크를 하게되면 죽은 뒤 6시간 안에 누군가에게 각막을 기증하게 된다. 순간 무심코 눈을 한번 쓱 만져봤다.

내가 죽어서 다른 한 사람에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곧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뭐 어차피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데 죽을 때까지 남 도우면 좋지”라는 생각에 ‘예’라고 답했다.

장례 방법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화장’을 선택했다. 다만, ‘납골당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별도로 적었다. 그래도 나중에 나를 그리워할 사람들이 찾아올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례 예식에 대해서는 취재 전날부터 고민을 했다. 가슴속으로 정했던 것을 한자씩 조심스레 적어나갔다. 조문객들은 ▶검은 옷을 입지 말고 일상복 차림으로 편하게 올 것 ▶‘장례’라는 단어 대신 ‘천국환송’이라는 단어를 쓸 것 ▶조화는 필요하지 않음 ▶찬송은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를 부를 것 ▶장례비용을 제외한 조의금은 전액 북한 어린이 돕기에 쓸 것 등을 적어 내려갔다.

‘나의 사망소식을 꼭 알리고 싶은 사람’에 대한 질문에선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아 온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누구를 적어야 할까.

가까운 친구들부터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많은 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작성자 서명과 증인 2명의 서명란이 있다.

옆에 있던 소망소사이어티 주혜미 디렉터가 “이제 거기에 서명하면 그 유언장은 법적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30여 분이 훌쩍 지났다. 분위기 참 묘하다. 다시 한번 유언장을 꼼꼼하게 살폈다.

“오케이”라며 혼잣말을 내뱉고 서명을 했다.

마무리된 유언장을 고이 접었다.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 유언은 죽음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기 때문이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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