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그래 이름은 뭔고? / 대담

 

정범모 박사님

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미 시카고 대학 철학박사
충북대 총장 . 한림대 총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현재 한림대 석좌 교수
<인간의 자아실현>, <교육평가>,
<학문의 조건> 등다수의 저술이 있음

“그래, 이름은 뭔고?” 정범모 교수님이 80평생 자신의 삶의 뜻을 반추해보려는 회상, 수상을 담아 최근에 펴낸 산문집의 제목이다. 너의 정체성. 너의 아이덴티티가 뭐냐는 함축된 뜻이 이 질문에는 들어있다. 나의 이름(정체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 우리들에게 “그래, 이름은 뭔고?”는 내 삶의 과거 현재 미래를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홍양희 : 선생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름은 뭔고?” 라는 책제목을 보는 순간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수유(須臾), 미소(微小)의 삶이라고 하셨지만, 80평생의 삶이 녹아 있는 글들 속에서 죽음에 대한 의미탐구와 깊은 묵상을 읽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원들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정범모 :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인 내가 대학생 때 어린 남동생이 죽었어요. 그때 어느 절에 갔는데 액자에 적힌 선시(禪詩)가 인상적이었어요.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짐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으니
삶이 오고 가는 것도 이와 같도다.”

이런 뜻인데, 불교 반야심경의 말대로 생과 사는 다 공(空)이고 무(無)이다 라는 말을 뜬구름에 비유한 깊은 뜻이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집마당을 거닐면서 감나무 낙엽을 보며 새잎이 햇빛을 받고 자라서 감이 달리고 이제 낙엽이 되었는데 죽음도 이처럼 왔다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죽음은 공이고 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 삶을 도리어 더 소중하게 더 진지하게 더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희랍신화를 빌려 마이더스왕이 현자(賢者)에게 물었어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어냐고. 그 대답이 “이 불쌍한 하루살이 종족들이여, 가장 좋은 것은 너희들이 태어나지 않은 일, 존재하지 않는, ‘무’라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일은 곧 ‘죽는다’는 일이다.” 생명, 삶, 인생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비극이라는 의미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불교에서 ‘무’는 ‘본래 없다’ 라는 뜻이고, 실존주의 사상에서 ‘무’는 ‘자칫 하면 없다’는 의미로 구별이 되는데 우리 삶 속에 ‘없다’는 무수히 많아요. 실패, 좌절, 역경, 굶주림, 절망이 ‘없다’에요. 그리고 그 끝에는 다가올 ‘죽음’이라는 ‘없다’도 기다리고 있어요.

생로병사가 다 ‘없다’에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없다’를 직면하는 용기가 있어요. 아기에게 예방주사 바늘을 갖다대면 영락없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려요. 그러나 잘 타이르면 참고 받아들여요. 그 용기는 ‘~ 때문에’ 라는 행동이 아니라 ‘~ 에도 불구하고’ 라는 행동이예요. 나는 그것을 ‘의연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내, 극기, 의지라고 불러도 좋아요.

의연성은 우리 인생에 갖가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즉 본래 마땅히 없어야 할 어려움, 불행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찾아올 것이 온 것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움, 슬픔, 아픔이 있지만, 참고 견디고 종당에는 이겨내는 힘을 말합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두렵고 무서움이 없을 수 없지요. 의연하게 대처하려는 노력, 저도 그렇게 애쓰고 있습니다.

홍양희 :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바로 삶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 대가족제도에서 살면서는 어려서부터 죽음을 자연스럽게 친숙하게 접했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삶에서는 죽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의연함을 기를 수가 없습니다. 죽음교육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정범모 : 미국사람들이 죽음이라든지 늙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는 자료를 읽은 적이 있어요. 죽음, 늙음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환경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이나 실패 좌절을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지요. 동화책에서도 만날 수 있지요. 바로 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죽음교육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홍양희 : 선생님께서 살아오시면서 의미있게 만난 죽음이 있으신가요?

정범모 : 동생을 잃은 경험이 충격적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죽을 뻔하다 살아난 경험이 있어요. 마흔살엔가 제주도 중문 앞바다에서 익사 직전에 큰 파도가 밀어 주어서 죽음의 유예를 받은 지 45년입니다.

그 해 여름 세미나에 갔다가 동료들과 중문 앞 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어요. 워낙 수영과 파도타기를 즐기는지라 신이 났어요. 파도를 2,30개쯤 넘어갔다가 돌아오려는데 섬뜩해요. 물살이 심상치 않는 거예요. 아무리 헤엄쳐도 제자리예요. 세기가 엄청난 저류(低流)가 있는 곳이에요. 공포가 엄습했지요. 죽어라 헤엄쳐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거예요. 그러자 오기가 생겼어요. 바닷물을 두세 모금 마시고 이를 악물었어요.

얼마를 지났을까, 힘이 거의 다 빠졌어요. 꿈속처럼 헤엄치는 데 이때 주마등처럼 지난날의 수많은 회상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가요. 그리고 힘이 다하여 물 속으로 가라앉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죽는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것인가 — 그러는 데 돌연 발이 땅에 닿아요. 정신 없이 솟구쳐 오르는데 그때 큰 파도가 나를 확 떠밀었어요. 비로소 살았구나 싶었죠. 그리고 몇 년 후 타임지에서 임사체험 사례보고서를 읽었는데 내 경험과 똑 같아요.

임사체험 자료의 증언에 의하면 세 단계를 거치는데, 첫 번째가 반격단계예요.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며 악을 쓰고 힘을 쓰는데 내 경우는 처음 이를 악물고 바닷물을 한 모금 마시고 오기를 부렸지요. 누가 이기나 보자고요. 두 번째, 생애회고 단계로 지난 회상들이 주마등처럼 명멸해요. 세번째는 황홀의 단계예요. 죽음 직전에 더없이 황홀하고 편안하다는 거예요. 나도 천상의 지복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행복하게 죽는다 라고 결론지은 보고서예요.

죽음을 이겨내려는 능력과 평소에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것은 일맥 상통한 듯 하지만, 그러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죽음이 안 무서운 것은 아니에요. 공포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죽음도 의연하게 맞을 수 있다고 믿어요.

홍양희 : 선생님께서는 나의 죽음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정범모 :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환상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어도 나만은 안 죽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고 있지요.
죽음을 연구한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맞는 이들의 심리 5단계를 말했지요. 첫 단계가 불치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지요. 둘째 단계에는 왜 하필 나냐고 분노합니다. 억울함과 원망이죠. 세번째 단계에는 그렇지만 하고 살길을 찾아 흥정하고 타협합니다. 넷째 단계에는 흥정도 소용없고 우울의 심연에 잠깁니다. 다섯째 단계에는 그래 라는 체관(諦觀)과 수락의 단계가 오고 안정을 찾습니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무, 없다, 비극의 의식이 그렇듯이 삶을 진지하게 만들고 어떤 의미에서는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요.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정겹고 놓치기 싫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전쟁 출전 전야의 연인들의 사랑은 처절하고 열정적이죠.
Rollo Mary는 이란 책에서 사람에게 죽음이 없다면 진정한 사랑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으로 안다면 우리가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사랑은 사랑으로 죽음을 이겨 낼 수 있으며, 불교의 자비도 고해를 이겨내는 길이 결국 자비라고 말하고있습니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답입니다. “사랑하라” 로 귀결됩니다.

내 나이가 되면 당연히 죽음을 생각합니다. 내 나이 83세, 죽음은 어김없이 맞이할 운명인데 그 황혼과 일몰은 할 수 없이 받아들이는 체관으로가 아니라 의연한 달관(達觀)으로 아름다운 노년을 거닐고 싶습니다. 일몰을 더 없는 안식의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 그가 살아 온대로 죽는다고 하지요. 죽음이 저기 있고 그리고 그것은 엄연한 삶의 일부입니다.

홍양희 : 선생님을 뵈니 건강한 노년을 여유롭게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건강을 어떻게 지키시는지요?

정범모 : 일본에 히노하라 시게야끼라는 노의사가 있는데 96세예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도 와서 강연을 했는 데 일본의 신노인회를 이끌고 있는 분이에요. 일본 성누가국제병원의 이사장으로 의사이고 날마다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음악을 즐기며 건강한 노년을 지내시는 분이에요.

나도 노년기를 즐기는 편이에요. 노년기를 즐기는 비결이라면, 먼저, 일이 있어야 해요. 내게는 정년이 없어요. 지금도 한림대 석좌교수로 주 1회 강의를 하고 책도 쓰고 있어요. 세미나, 간담회로 분주하지요. 둘째,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해요. 셋째, 운동을 해야 해요. 난 40년간 즐긴 테니스를 지금도 하고 있고, 수영을 즐기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키를 탔어요. 운동은 몸만 아니라 뇌의 세포도 자라게 하여 정신건강도 지켜 줍니다. 또 병원에서 비타민 등 영양제를 지어먹으며 현대의학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어요. 넷째, 가족, 인간관계가 편안해야지요. 또 다른 사람도 생각하며 명랑하게 지냅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어서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도 필요합니다. 다섯째, 명상을 통해 자기 나름의 달관을 이루어야지요.

홍양희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삶과 사랑과 죽음> 2007년 11,12월호 특집 대담 중에서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