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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능하고 무력한 사람  2010년 1,2월호 중에서

 

김 성 환 목사

샌프란시스코 신학대 목회학박사
전 영동세브란스 병원 원목실장

대담: 장세리 편집위원

김성환 목사는 자신이 말을 잘 못한다고 겸손하게 말씀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매끄러운 말솜씨에 지레 주눅이 든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무슨 말실수를 하게 될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반대로 솔직하고 수수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껴서 상대방과 거리가 확 줄어들었음을 알게도 된다. 김목사님의 말을 잘 못한다는 말씀은 긴장감을 풀게 하고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시키기 위한 목사님의 배려임을 알고 있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에서 목회학 박사를 하신 분이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는 데는 병원 원목으로 20년간 재직하고, 은퇴 후에 10년간 계속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활동과도 관련이 깊으리라고 본다.

-30년간 병원원목으로 호스피스 봉사로 사역하시면서 평안한 죽음, 안타까운 죽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많은 죽음을 만나셨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잘 아는 70대 중반쯤 되는 교회권사님이 있었죠. 4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4남매를 잘 키워 냈어요. 평소 신앙생활과 교회봉사에 열심이었고, 늘 이웃에게 베풀고 살았어요. 그러다 위암이 발견되면서 투병생활이 시작됐어요. 저와 제 아내가 수시로 문병도 가고 예배도 드렸어요. 그러다 급격하게 병세가 악화되고 오랜만에 교회에 오셨는데 많이 야위었더군요. 교인들이 걱정했지만 그 분의 얼굴은 밝았고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어느 날인가 권사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이 와서 급히 달려갔어요. 심각한 상태였지만 역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고,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임종실에 옮겨져서 기력이 쇠잔해 가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얼마 후 임종하는 순간 말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모양 움직임이 역시 ‘감사합니다’하면서 숨이 끊어졌어요. 임종을 지켜봤던 가족과 친지들은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사의 임종이었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사람이 막상 투병과 임종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모습이 더 인상적입니다. 목사님도 한 때 암에 걸려서 죽음을 생각하신 적이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1984년 영동세브란스병원 원목으로 있을 때였어요. 소화가 잘 안돼서 진찰을 받고 몇 가지 검사를 했어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3~4일 동안 내가 목사이면서도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했어요. 위암 진단이 내려졌고 당장 입원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진단 내려지는 시간은 불과 몇 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리 속에는 필름이 초고속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처자식문제,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 무엇보다도 내 생명이 끝나나 싶은 절망감이 들었어요.”

“그 순간 힘껏 ‘하나님’하고 불렀어요”

-그런 복잡한 문제들과 절망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나요?

“내 마음에 새로운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수술을 몇 시간 앞두고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더욱이 내가 내 생명을 어떻게 살릴 수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무능하고 무력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생명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 힘껏 ‘하나님’하고 불렀어요. 하나님께 가족문제, 내가 다하지 못한 일들, 내 생명까지도 맡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내안에 겹겹이 쌓여 있던 무거운 문제들이 삽시간에 그분에게 모두 옮겨져 버리고 난 가벼운 몸이 되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느끼셨군요?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평상시에 순간순간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야만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거죠.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안했던 경험이 천국생활인 걸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수술이 잘 되서 암이 완치됐지만 그 후 내 자신의 죽음 준비는 항상 하나님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 다른 말로 말하면 죽음의 사건을 예상해보며 살고 있다는 거예요..

“죽음교육은 죽음을 객관화할 수 있는 시기에 해두어야”

-죽음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감하실 텐데 학교나 교회, 사회교육기관에서 어떤 역할이 강조되어야 할까요?

“죽음교육은 적어도 죽음을 객관화할 수 있는 시기에 미리 해두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봤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다보니까 임종에 임박해서 호스피스 개입하는 것은 무의미해요. 죽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또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교육이 되어져야 해요. 임종이 임박하게 되면 이성적인 것보다 두려움의 감정이 환자를 압도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감정적인 돌봄도 한계가 있어요. 반드시 죽음교육은 죽음을 객관화할 수 있는 시기, 학교생활이나 교회생활에서 시행되어져야 해요.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간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린도 후서5;1-3)이 있다고 하죠. 이것은 반드시 사후에 주어지는 생명으로서가 아니라 현세와 내세를 포괄한 전체적인 한 생명, 본래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것 이예요. 본래적인 생명이 죽음이라는 통과제의를 통해서 현세에서 내세로 옮겨가게 된다고 가르쳐야겠죠.”

-목사님께서 가슴 아픈 죽음을 겪으셨다죠

“벌써 20년이 되가네요. 다 키워서 시집까지 보낸 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어요. 딸이 임신 중에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감소해서 임신 때문인 줄 알았죠. 그런데 임신중독의 기미가 보여서 검사를 해보니 위암이었어요.
서둘러 수술하면서 딸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병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어요.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분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책임있게 살려고 했어요.
수술 후에도 수술이 잘되었는지, 앞으로 치료는 어떻게 할 건지 물은 적이 없었어요. 2개월 반 동안 투병하면서 3번의 입퇴원을 했어요.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통증을 호소하는 법도 없이 웃음과 농담으로 이겨 냈어요.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10여일 전부터는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화장실 문을 잠그고 피를 토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어요.
어느 날 통증이 극에 달하자 딸은 제 아내에게 ‘엄마 ! 나 꼭 한 번만 울께!’하며 눈물을 보였지만 병상에서의 눈물은 그게 다였어요. 고통과 슬픔까지도 혼자 삭히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데 써버린 딸 이예요. 딸이 가고 나니까 아내가 딸을 그리며 빼곡히 적어둔 글을 보게 되었어요. 어떤 페이지는 눈물로 얼룩져서 알아볼 수도 없었고,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었어요.”

“딸은 신앙적인 삶을 유언처럼 남기고”

-사모님이 쓰신 글을 모아서 ‘엄마 ! 나 꼭 한 번만 울께!’ 를 출판하셨군요.

“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 날 밤 가정예배 때 사력을 다해 한마디씩 또박또박 속죄를 간구하는 기도와 당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기도를 드렸어요. 그 아이는 신앙의 울타리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신앙적인 삶을 유언처럼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어요.
아내는 글을 쓰면서 몇 됫박이나 될 만큼의 눈물을 흘렸어요. 자기의 피붙이를 잃은 아픔을 하나님께 묻고, 조용히 그분의 뜻을 들으려는 경건함을 보았기 때문에 아내가 책 내는 것을 극구 꺼려했지만 내가 서둘렀어요.”

-애지중지 키운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이고 진혼곡이네요.

“그 아이는 우리 곁에 27년을 머물다 갔지만 엄마의 위로와 기도로 영원히 살아 있어요. 또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살면서 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한 아내의 다소곳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가를 깨달았어요.

-오늘 우리사회가 죽음을 배워야 한다면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죽음에 대한 인식의 폭이 좀 넓어져야겠어요. 서양의 전쟁영화 같은 것을 보면 최전방에서 적과 마주하고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병사들이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참호 속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전우와 농담을 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죽음을 넘어 사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가끔 우리 주변에서도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자기 목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신성인하는 소식을 듣게 되요. 누군가에게 선한 이웃이 많이 생기는 사회분위기가 되어가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자신도 늘 선한 이웃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삶과 사랑과 죽음> 2010년 1,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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