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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영원한 삶  2010년 3,4월호에서

 

이경식 박사 (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  강남 성모병원 완화의학과 명예교수)와
장세리 편집위원의 대담
올해는 유달리 눈과 추위 때문에 겨울치레를 톡톡히 하고 지나간다. 이경식 박사님을 만나기 위해 강남성모병원 가는 날도 그런 날씨였다. 막상 박사님과 차 한 잔을 마주 놓고 앉으니 의사이기보다 신앙인에 더 가까운 대화에 밖의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온화했다. 그동안 각당복지재단의 호스피스교육에 오셔서 호스피스 환자와 암환자의 통증조절을 강의하시는 모습에서는 의사로서의 얼굴만을 봤었다. 그런데 죽어가는 환우를 돌보고 그들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며 언제 주님 마음에 드는 신앙인이 될까를 고민하며 기도하게 된다는 말씀에서 경건한 성직자의 얼굴이 겹쳐진다.-하고많은 분야 중에서 어떻게 호스피스의사가 되신 건가요?

“카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암전문의 공부를 했어요. 1988년 강남성모병원에 호스피스 병동(10병상)이 개설되면서부터 있었어요. 암환자는 항암제치료를 하다가도 전이되면 10명중 7~8명은 죽게 되요. 처음엔 그런 환자를 본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죠. 다가가기도 싫고 피하고 싶었어요.”

-의사는 보통 죽음에 익숙하고 덤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니 힘드셨군요.

“치료되는 환자가 아니라 대부분이 죽어가는 환자여서 힘들었어요. 한때는 도망가려고만 했어요. 20년 전부터 환자를 보고나면 힘드니까 성체조배를 시작했어요. 그러면 편해지더라구요. 저의 삶을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였어요. 예수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면서 죽음은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신적인 차원이란 답을 얻었어요. 호스피스 환우를 돌보는 일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살다보니까 이끄는 힘에 의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성체조배- 성체(예수의 몸)앞에서 특별한 존경을 바치는 행위

죽음 때문에 사랑이 증폭돼서

-호스피스 환우들을 돌보면서 죽음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매일 죽음을 가까이 보니까 죽음은 여러 단계로 발전해서 내 삶의 일부가 되었어요. 갈등이 심했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화해와 용서를 쉽게 하는 걸 많이 봤어요. 특히 부부갈등이 심한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삶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선함이 극대화되는 걸 보게 되요. 물론 편견에 가려졌던 실상을 보게끔 호스피스가 도와주죠. 그래서 죽음이 삶의 완성이고 부활인 걸 깨달았죠. 결국 죽음 때문에 사랑이 증폭돼서 죽기 전에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더라구요. 하루하루가 영원한 삶이면서 내 자신도 죽음이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어 친근해요.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요.”

-사람이 한평생 살아오던 방식이 죽음 앞에서 바뀌는 이유가 뭔가요?

“죽음 앞에서는 욕심이 빠지기 때문이죠. 또 호스피스에서 아프지 않게, 편안하게, 따뜻하게 정성껏 돌보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죠. 호스피스를 통하여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아주 놀라운 힘을 갖고 우리를 변화 시킬 수 있어요. 이런 변화를 남은 가족이나 친지들이 보게 되면 그 사람의 일생이 변해요.”

-많은 환자들 곁에서 평안한 죽음, 안타까운 죽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사람을 만나보셨는지요?

“언젠가 호스피스팀에서 시골에 살고 있는 말기 두경부암 환우를 가정방문했어요. 그분은 30대의 젊은 나이로 한때는 운동선수였지만 이제는 암이 얼굴 여러 곳에 퍼져 얼굴 모습도 흉하게 변해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입도 벌리지 못해 먹지도 못하니까 위에 구멍을 내어 연결된 호스로 적은 양의 영양제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어요.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모습에다 암은 전신에 퍼지고 뼈에 전이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해서 왼쪽으로만 누워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통스러워했어요. 그나마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오른 손은 묵주를 꼭 쥐고 고통 속에서 기도하고 있었어요. 옆에서 간호하는 어머니는 비탄에 젖어 가슴을 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죠. 너무도 비참한 모습에 봉사자들은 어머니와 함께 울었고, 저도 가슴에 창이 찔린 듯 아파서 쩔쩔 맬 수밖에 없었죠. 우리 모두 충격 속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15,34)하고 부르짖었어요.”

호스피스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그런 어렵고 딱한 상황에서 호스피스팀이 어떻게 돌봐드려야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분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라고 믿으며 사랑을 다해 돌봐드리기 시작했어요. 암성통증은 적절한 용량의 마약성 진통제와 보조약물을 사용해서 조절했어요. 그러자 그 분은 고통 속에서도 감사의 눈빛으로 비뚤어진 입에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더불어 어머니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때 죽어가는 호스피스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가까이서 느꼈어요.”

-호스피스환자를 돌보려면 시설과 의료진이 상당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강남성모병원에 16개 병상이 있는데 4~5명의 의사와 간호사도 일반 병실의 2.5배의 인원이 필요하고 봉사자 50여명이 환자를 돌봅니다. 중환자실과 비슷해요. 집중케어를 해야 하고,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도 대처해야하기 때문에 간호사만 해도 숙련된 간호사가 필요하죠. 정신적, 의학적, 영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아니고선 지탱이 안돼요.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음과 부활의 경계선에서 일하다보니 성숙한 인격과 확고한 신앙심이 기본이 돼야죠.”

호스피스는 국가사업

-우리나라에서 1963년 강릉 갈바리병원에서 마리아의 작은자매회 수녀들에 의해 호스피스가 시작되었죠. 호스피스 역사가 길지만, 호스피스 이용환우는 전체 말기암환자의 10%도 안 되는데 왜 그럴까요?

“우선 죽음에 접근한다는 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죠. 우리나라 문화가 죽음을 배타시하고 거부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죽음이 삶속에 친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제일 큰 이유이죠. 또 다른 이유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면 손해가 나니 안타까운 일이죠. 이건 정책하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결해줘야 많은 호스피스 환자가 혜택을 보게 될 텐데….호스피스를 국가사업으로 인식하고 강제적으로도 care를 받도록 해야 되요. 먼저 천주교, 기독교, 불교등 종교인만이라도 한 목소리로 움직여서 호스피스 제도화를 추진해야죠.”

-2년 전에 성모병원을 정년퇴직한 후에도 계속 병원진료를 하면서 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에서 봉사를 하신다죠?

“병원을 떠났는데도 아직 제 손을 필요로 하는 환우들이 있어서 계속 보고 있어요. 1년 반전부터는 삼성산 호스피스 봉사회에서 무료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하고 있고요. 누가 내게 왜 호스피스를 떠나지 못하느냐고 물으면, 하느님과의 만남 때문이라고 대답해요. 호스피스 환우들과 하나 되어 죽음을 깊이 체험하고, 그들처럼 죽음 앞에서 저의 인간적인 자랑이 무너지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꽉 쥐고 있던 인간적인 욕심이 낙엽처럼 사라지면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삶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물이며, 저를 그리스도가 되라고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호스피스에서 세상 어디서도 보기 드문 사랑을 보게 되었어요. 내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시킬 수 있게 살다 가고 싶어요.”

공짜로 받은 것을 은퇴 후에도 봉헌하고 싶은 소망을 이루게 되서 나이 먹는 게 행복하다는 박사님께 죽음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느냐는 질문은 드리기에도 너무 송구스러워 접기로 했다.

주 하느님
주님께서 저를 호스피스로 부르신 후
저는 수많은 죽음,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명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제가 사무치게 느끼는 것은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이 지나가는 것이며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결실을 갖고
누구나 하느님을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경식 박사의 책 ‘호스피스사랑의노래’중에서-

<삶과 사랑과 죽음 > 2010년 3,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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