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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로 가는 길목 리와 마을] 신이 물 대신 준 선물 ‘나트론’ 거대한 염전 일구며 마을 생계 2013년 11월 27일 중앙일보

 

활용법 몰라 단순히 암염 판매
나트론 공장 세울 지원 기다려


 

사막 둘째 날 동틀 녘이었다. 리와의 보물을 보여준다며 술탄의 장자 아바유노스(30)는 마을 남쪽으로 손을 끌었다.

10여 분 걸어가니 모래 언덕 아래로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온통 회색 땅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생경한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아바유노스가 말했다.

“와디(Wadi).”

가이드 세레스틴은 와디를 “나트론(Natron)”이라고 통역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나트론은 소금의 원료인 탄산나트륨이다. ‘소다회’라고도 한다.

우기 때 짧게 내리는 비가 마르면, 나트론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 회색 땅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염전인 셈이다. 나트론은 예부터 소금의 원료로 쓰였다. 6세기까지는 황금과 맞바꿀 정도로 귀한 특산품이었다.

아바유노스는 “신이 사막에 물 대신 준 선물”이라고 했다.

염전은 대대로 술탄의 땅이다. 술탄은 ‘소망 우물’ 덕분에 마을 인구가 늘자, 사람들의 호구지책으로 염전을 무상 대여했다. 이전까지는 세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날도 아침부터 마을 장정 20여 명이 나트론밭 한가운데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했다. 넓어서 걸어가기엔 멀었다.

장정들은 굳은 나트론을 삽으로 퍼올리고 있었다. 작업은 쉽다. 삽으로 퍼서 부서진 나트론에 물을 섞어 벽돌 모양으로 ‘암염’을 만들어 쌓으면 끝난다. 여기저기 그 암염을 쌓은 무더기들이 보였다.

아바유노스는 나트론 전문가라며 아브라 챠리(42)씨를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 일을 했다.

그는 만드는 방법부터 주의할 점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챠리씨는 “해가 머리꼭대기에 올 때까지만 작업한다”며 “그 이상 일하면 더위에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그나 염전 소유주 아들인 아바유노스도 나트론의 활용법은 몰랐다.

챠리씨는 “나트론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듣긴 했지만,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고 했다.

나트론의 활용 분야는 세재부터 비누까지 넓다. 그중에서도 녹색의 혈액이라고 불리는 ‘스피룰리나(spirulina)’를 만들 수 있다. 스피룰리나는 나트론밭에 물이 고인 나트론 호수에서 생성되는 조류다. 클로렐라보다 단백질이 20% 더 많은 고단백 식품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차세대 먹거리지만 이들에게는 단순한 밥벌이일 뿐이었다. 챠리씨는 “국경이 가까운 니제르에서 트럭이 한 달에 4~5번 와서 실어간다”면서 “한 트럭 가득 실으면 5만세파프랑(100달러) 주는데, 20여명이서 나눠가진다”고 했다.

아바유노스는 나트론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는 “나트론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지원해주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풍족해질 수 있다”면서 “돈이 모이면,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리와는 사막 입구에 있다. 종종 방문객들이 있다. 왜 다른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바유노스는 “사람들은 사막에 모험이나 여행을 하기 위해 오긴 해도 도와주기 위해 오진 않는다”고 했다.

사막에서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줄 누군가를 그들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험난했던 ‘사막 취재’ 후기

모래에 빠지고 또 퍼내고…
마음만 급했던 1박2일 900km 강행군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막 취재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전날까지 2박3일간 남쪽으로 2000km를 강행군하고 곧바로 다시 짐을 꾸려 북쪽으로 향했다.

주어진 시간은 1박2일, 정확하게는 38시간이었다. 그 안에 최소 900km를 왕복해야 했다. 사막에서 이동속도는 평균 시속 30~40km를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차를 세우면, 모래에 빠진다. 빠지면 모래를 퍼내고, 차를 밀어 몇 십 분간 씨름해야 했다.

가장 큰 걱정은 정작 뭘 취재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차드지부와의 의사소통에 혼선이 있어 사하라 사막지역 취재의 밑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가자’고 출발했기에 마음은 더 급했다.

1차 목적지는 최북단에 ‘소망 우물’이 있는 사막 초입 마을 리와였다. 거기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 ‘진정한 사막’을 가자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차드 수도 은자메나에서 북서쪽의 리와까지 직선거리는 200km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중간에 차드 호수가 가로막고 있어 돌아가야 했기에 실제 거리는 2배 이상이었다. 그마저도 중간에 길이 끊겨 1km 전진을 위해 2km를 우회해야 했다.

가면서 차 지붕에 수십 차례 머리를 찧었다. 나중엔 꼬리뼈까지 아팠다. 기름을 아끼느라 가장 낮게 튼 에어컨은 화씨 120도 사막 열기를 식혀주지 못했다.

동틀 때 출발해 해질녘에야 1차 목적지 리와에 도착했다. 이 맘 때 차드에서는 오후 5시반이면 해가 진다. 이미 깊은 취재는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그 먼 길을 헛걸음했나 싶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건 리와의 왕 술탄이었다. 낯선 동양인에게 칙사 대접을 해줬다. 그리고 장남을 시켜 어두운 밤길 사막을 안내하도록 했다. 덕분에 짧은 시간동안 사막의 아픔을 첫머리나마 읽을 수 있었다.

술탄은 저녁식사도 차려줬다. 우린 즉석밥과 라면을 선물했다. 그는 “음식을 나눈 우리는 이제 가족”이라고 했다. 한국에도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흡족해 했다.

이튿날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무슬림인 마을 사람들의 기도 소리 때문이다. 마당 환한 달빛 아래 오는 동안 내내 안달했던 내가 보였다. 그들의 결핍을 찾으러 간 취재에서 내 결핍만 도드라졌다. 오는 길은 심난했다.

글·사진=정구현 기자

 
 
발행: 11/27/13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11/26/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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