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려고 하기보다 품위있게 죽고 싶어요”
[중앙일보]
말기 환자들 존엄사, 호스피스 선택 확산
장연화 기자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의 평균 수명은 86.1세로, 백인(79.3세)이나 흑인(73.3세), 라틴계(83.1)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말기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받는 수혜는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뉴아메리칸미디어에서 지난해 10월 주최한 소수계 언론인 완화치료 펠로십 컨퍼런스에서 공개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호스피스 서비스를 포함한 완화의료 수혜자는 백인 환자가 82.8%로 가장 많았으며, 아시안 환자는 100명중 2명 꼴에 그쳤다.
또 가주 주민들이 죽음을 맞는 장소로 병원이나 너싱홈보다는 가정(자택)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주건강관리재단의 ‘완화의료에 대한 의식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고 싶다고 답했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고민하는 것은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67%가 의료비로 인한 가족의 경제적 부담감을 가장 걱정한다고 밝혔으며, 그 뒤로 ‘죽기 전까지의 고통’을 꼽았다.
설문조사는 가주에 거주하는 성인 166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복수응답이 허용됐다.
발행 2015/02/17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15/02/16 20:49
아시안 오래 살지만 ‘웰 다잉’ 잘 못한다
[중앙일보]
평균 수명 86.1세…인종별로 최고
말기환자 ‘완화 의료’ 수혜는 저조
장연화 기자
고통스런 항암치료 대신
죽음 받아들이며 준비
그 동안 못다한 일 하며
가족과 함께 마지막 맞이
‘웰다잉’ 캠페인 영향 받아
한인들도 호스피스 선호
지난해 6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20대 말기 암환자가 ‘존엄사’를 내세워 의사가 처방한 독극물을 마셨다. 브리타니 메이너드(29)는 악성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존엄사를 예고해 미국에서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메이너드가 거주하는 오리건주는 ‘사망존엄사법’에 따라 시한부 환자는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복용해 존엄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메이너드처럼 오래 살기보다는 품위있게 죽음을 맞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남가주에도 확산 추세다.
웨스트 LA에 있는 시더스사이나이병원의 지원치료병동(Supportive Care Medicine)에서 만난 제임스(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뉴아메리칸미디어 주최로 지난해 열린 ‘완화치료 및 호스피스’ 컨퍼런스를 통해 방문한 시더스사이나이병원은 지원치료병동에서 말기 환자들에게 호스피스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부인의 마지막 열흘을 이곳에서 함께 보내면서 죽음을 함께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제임스는 “아내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말했었다”며 “가족과 친구, 친척 등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다 행복하게 떠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 수술받은 유방암이 재발되면서 뇌까지 번져 말기암 진단을 받았던 제임스의 부인은 고통스런 항암치료 대신 호스피스 서비스를 선택한 것이다. 제임스는 “통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가 전부였지만 아내는 떠나는 순간까지 평화로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선택하는 한인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위암 말기로 최근 3~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존 김(가명·74)씨도 항암치료 대신 호스피스 서비스를 선택했다. 호스피스 의사는 간호사와 함께 이틀에 한번씩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찾아와 면담하고 통증 상태와 영양 상태 등을 체크한다.
김씨는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살려면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생존할 가망성도 없는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는데 쓰고 싶지 않았다”며 “남은 시간은 자녀들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못다한 일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장녀인 캐런 김(가명·44)씨는 “아버지의 결정을 처음엔 반대했지만 편안한 얼굴을 보니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한인들의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소망소사이어트에서 벌이는 웰다잉(Well-dying) 캠페인이 적지않은 영향을 줬다. 지난 2007년 설립된 소망소사이어티는 ‘준비된 죽음을 맞자’는 슬로건 아래 유언장과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 작성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설립자인 유분자 회장이 간호사로 20여 년을 일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유 회장은 신생아실에서, 화상 환자를 담당하면서, 또 너싱홈에서 5년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환자와 가족들을 목도한 경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남편과 사별하고 형제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준비할수록 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유 회장은 “가까운 곳을 여행할 때도 준비하는데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이라면 더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며 “죽음을 준비하려면 가족들끼리 대화를 해야 한다. 또 정부가 제공하는 호스피스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 정보도 알아둘 것”을 조언했다.
이에 대해 칼 스타인버그 시에라패밀리헬스의 최고 경영자(CEO)는 “사람들이 호스피스를 죽기 전에 방문하는 장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호스피스 서비스는 집에서도 받을 수 있고 병원에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인버그 CEO는 이어 “일반 병원에서 의사들은 암을 없애는 게 우선이고 통증을 없애는 건 그 다음이지만 호스피스 의료진에겐 그 반대”라며 “전문가가 사람과 증세에 따라 고통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처방한다. 환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발행 2015/02/17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15/02/16 16:08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회장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가장 안타까워”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처음에는 잘 사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웰빙(Well-being)’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웰에이징(Well-aging)’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으로 차츰 캠페인을 옮긴 소망소사이어티의 유분자 회장(80·사진)은 “준비한 만큼 떠나는 길이 더 쉬워진다”는 말로 웰다잉의 뜻을 설명했다.
2007년 8월 창립한 비영리기관 소망소사이어티에서 하는 운동은 크게 ‘유언서 작성’과 ‘장례절차 간소화’, ‘시신기증’이다. 갑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됐을 때 병원에서 받는 의료치료를 결정한 ‘사전의료지시서’ 작성도 돕는다.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준비된 죽음을 맞도록 돕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작성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는 지난해 말 현재 9283부다. 시신 기증 역시 지난 6년동안 715명이 신청해 28명이 사망후 기증했다.
그렇다고 죽음만 홍보하지 않는다. 삶과 희망도 나눈다. 바로 아프리카 케냐에 이어 중앙 아시아 국가에 ‘우물 파주기’ 운동이다. 지금까지 300곳 가까이 우물을 기증한 유 회장은 지난 2008년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지금도 우물이 생긴 지역의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유치원 설립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유 회장은 웰다잉 운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라고 꼽았다.
한 예로 “고통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고안된 호스피스 서비스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하고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치료받다 사망하는 한인 환자들이 적지 않다”고 유 회장은 지적했다.
유 회장은 이어 “죽음은 혼자 맞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겪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영행을 준비하듯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한인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문의: (562)977-4580
발행 2015/02/17 미주판 6면 기사입력 2015/02/16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