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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이선주 목사님을 추모함 (이정근 목사, 소망소사이어티 편집)

* 이선주 목사님은 소망 소사이어티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편집고문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항상 소망 소사이어티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추모사]

이선주 목사님을 추모함

  이선주 선배님, 어쩐 일로 지금 이곳에 이처럼 조용하게 누워계십니까? 소망소사이어티의 유분자 이사장님께서 이 선배님과 저와  셋이서 조속한 시일 안에 식사회동 한번 꼭 하자고 제안하셨기에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그만 졸지에 관속에 누워계신 선배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고 서럽기조차 합니다. 

  이 목사님은 제가 평신도로서 미주동아일보에 기자로 일할 때 저의 언론선배이셨습니다. 언론인의 꽃인 편집국장을 미주동아일보와 미주중앙일보 등에서 역임하시면서 표준 언론인, 정통언론인의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특히 크리스천 헤럴드 창간을 자문하셨고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하신 점에서도 저의 선배가 되셨습니다. 유분자 장로님께서 <재미간호신보>를 발행하실 때에 자문역으로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그 신문이 세계 각 처에 흩어져 있는 한인간호사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1981년도에 잡지 <뿌리>를 발행하실 때에 창간호에 꼭 글 한 편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는데 그래서 게재된 것이 “살아남음의 신학”(Theology of Survival)이었습니다. 온 인류는 물론 모든 피조물들도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하는 것이 가장 궁극적 목표라는 점에서 기독교가 그 해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발행인으로서 그 글을 읽으시고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셨지요. 그 찬사가 지금 “함생신학운동”에 마지막 삶을 쏟아 붓도록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도 저보다 큰 선배가 되셨습니다. 미주흥사단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많은 헌신을 하셨고 그 가운데 흥사단창설100주년 기념책자를 편집 출판하시는 일을 완성해 가시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도산선생의 사상과 지도력의 기독교적 기초’라는 저의 논문을 읽으시고 역시 큰 격려를 보내주셨고, 도산대학교 설립안을 제시받으시고는 정말 해볼 만한 일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선배 목사님의 넓은 가슴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목사님은 미주한인이민역사가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겨 놓으신 점에서도 저의 선배가 되셨습니다. 특히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미주한인교회 창설 100주년을 계기로 <고난과 영광의 100년>이라는 큼직한 책들의 편집을 주도하셨습니다. 그것도 언론인 정신을 따라 방대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고 정확하게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 많은 원고를 집필하셨는데도 컴퓨터보다는 육필원고로 하셨고 특별한 보상이 따르는 일이 아닌데도 마침내 완성하셨으니 실로 주님처럼 십자가에 목숨을 걸어놓고 하신 일로 후배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연세대학교의 백락준 총장님께서 “한국교회사”라는 명저를 남기신 정신을 이어가시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선주 목사님을 선배님으로 늘 예우를 해드리니까 언제인가는 한 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 교회담임목회 한 번 못했는데 이 목사님은 교회도 개척하시고 목회도 규모 있게 하셨으니 오히려 저의 선배이시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 드렸습니다. “어디 개체교회 목회만 목회인가요. 이 선배님은 언론목회, 역사기록목회, 인권목회, 통일목회를 하시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 특유의 함박웃음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선주 선배님의 역사관이나 인권운동과 통일운동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닌 것 때문에 괴로워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선배님께서는 항상 폭넓은 관용을 가지신 분이셨기에 저 같은 온건보수주의자와도 자주 만나고 대화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70 년 만에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고, 공산주의 정권이 혁명 70년 만에 해체된 것처럼 남북 사이에도 광복 70년이 되는 2015년에는 휴전선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예상합니다. 그 날이 오면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가 여기에서 한 말을 세상은 오래 기억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선배님께서 남겨놓으신 저술과 인격의 향기와 삶으로 보여주신 일들은 미주한인들과 남북 8천만 동포들이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선주 선배님, 이제 하늘나라에 먼저 이민 가심으로 또 한 번 저의 선배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만 지금 이 목사님 영혼이 공간적으로 무한대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훨훨 날아다니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 부족한 후배도 이 선배님과 멀지 않아 만나 뵙게 될 것을 기다립니다. 그 곳에는 무슨 식당이 있는지요? 저와 유분자 회장님과 이 선배님 셋이서 하늘나라에서 식사회동 한 번 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추모사를 마칩니다.

주후 2014년 2월 14일

이 목사님과 한 시대를 사는 기쁨을 누린

후배 이정근 목사 드림

(세계한인기독언론협의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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